[스포티비뉴스=잠실, 김태우 기자] 전날(15일) 잠실 두산전에서 연장 11회 혈투 끝에 안재석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고 진 KIA는 16일 경기 승리가 반드시 필요했다. 15일은 경기도 진 것이지만, 그 내용이 너무 좋지 않았다. 이 악몽을 잊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역시 승리였다.

경기 내용이 어렵게 풀렸지만 그래도 이길 수 있는 발판은 마련했다. 0-2로 뒤진 7회 오선우의 적시타로 한 점을 추격했다. 1-2로 뒤진 9회 1사 후 패트릭 위즈덤이 상대 마무리 김택연을 상대로 큼지막한 대형 솔로홈런을 터뜨리며 분위기를 완전히 돌려놨다. 흔들리는 상대를 놓치지 않고 물고 늘어진 KIA는 2사 2루에서 김태군이 좌익수 키를 넘기는 역전 적시 2루타를 때리며 기어이 경기를 뒤집었다.

성영탁 전상현이라는 필승조 투수들은 지고 있는 상황에서도 아낌없이 쓴 KIA는 이제 9회 마무리 정해영이 바턴을 이어받아 굳히기에 들어갔다. 그런데 후반기 들어 뚜렷한 성적 저하에 시달리고 있는 정해영이 이날 KIA의 밤을 더 큰 악몽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 1점 리드를 지키지 못했고, 급기야 도중에 강판되는 수모를 겪었다.

1사 후 김기연에게 안타를 맞은 것까지는 괜찮았다. 그런데 케이브에게 볼넷을 내주면서 위기가 불거졌다. 1사 1,2루에서 안재석에게 중전 안타를 맞아 만루 위기에 몰렸다. 여기서 KIA 벤치는 정해영을 교체했다. 하지만 정해영을 구원한 조상우가 김인태에게 우익선상 2타점 끝내기 2루타를 맞고 고개를 숙였다. 정해영에게 패전이 올라갔고, KIA는 연이틀 끝내기 패배의 허탈함을 맛봤다.

한 가지 관심을 모은 것은 정해영의 교체 타이밍이었다. 위기에 몰렸다고 해도, 그 위기의 결과가 아직 결정되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투구 수(12구)가 많은 것도 아니었다. 보통의 팀들은 이 상황에서 마무리를 바꾸지 않는다. 일단 결과가 어떻게 되는 마무리에게 끝을 보게 하는 것이다. 하지만 KIA는 뭔가 서둘러 투수를 교체했다.

이상징후도 있었다. 구속이 뚝 떨어졌다. 정해영이 시속 150㎞대 중반의 파이어볼을 던지는 유형의 선수는 아니지만, 그래도 좋을 때는 140㎞대 후반에서 150㎞ 초반의 공이 나온다. 높은 타점에 수직무브먼트도 좋은 편이라 위력이 있다. 정해영이 지금까지 프로 통산 147세이브를 거둘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그런데 이날은 구속이 완전 떨어져 있었다.

1~2㎞ 차이는 경기 컨디션에 따라 언제든지 생길 수 있다. 그런데 KBO리그 공식 구속 측정 플랫폼인 ‘트랙맨’의 집계에 따르면 이날 정해영의 패스트볼 최고 구속은 시속 144.5㎞, 평균은 142.9㎞에 그쳤다. 구속 4~5㎞가 한꺼번에 사라진 것이다.

몸을 충분히 풀고 나왔을 상황이었다. 완급 조절을 할 여유가 있는 순간도 아니었다. KIA 벤치도 정해영의 구속을 보고 당황했을 법하다. 회전 수나 릴리스포인트, 수직무브먼트 등 다른 데이터는 시즌 평균과 비슷했는데 유독 구속이 떨어졌다.

정해영의 구위는 근래 들어 확실히 좋을 때보다 못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전반기 막판부터 꾸준히 지적됐던 문제로, 충분한 휴식 시간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것을 찾지 못하고 있다. 전반기 한때 멀티이닝을 소화하며 투혼을 불살랐던 시기가 있었는데 후유증이 몰려오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정해영은 전반기 41경기에서 44⅓이닝을 던지며 평균자책점 3.25를 기록했다. 그런데 후반기 8경기 평균자책점은 무려 7.71에 이른다. 피안타율은 0.382까지 치솟았다.

아무리 좋은 마무리 투수도 매번 팀 승리를 지켜낼 수는 없다. 한 시즌에 못해도 5번은 블론세이브를 한다. 문제는 정해영의 구위 저하가 일시적인 아닌, 앞으로 꽤 오래 갈 가능성이다. 구단에서 꼼꼼하게 체크하고 있겠지만, 이 경우 KIA는 마무리 교체 등 여러 가지 시나리오를 모두 세워두고 대비를 해야 할 수도 있다. 가장 좋은 것은 정해영이 원래 모습을 되찾아 다시 팀의 뒷문을 지키는 것임에 의심의 여지는 없다. 하지만 아니라면 KIA도 머리가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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