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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부르지 않더라' 이영표의 고백…월드컵 4강에도 유럽 오퍼 ‘0’, 히딩크 전화가 바꾼 운명
[OSEN=이인환 기자] 한국 축구 역사상 최고의 레프트백으로 평가받는 이영표가 23년 전 유럽 진출을 둘러싼 숨은 이야기를 공개했다. ‘월드컵 4강 주역’이라는 화려한 수식어와 달리, 그의 유럽행 출발선은 의외로 냉혹했다.
이영표는 최근 유튜브 채널 ‘캡틴 파추호’에 출연해 “2002년 한일 월드컵을 마치고도 유럽 구단의 오퍼는 단 한 건도 없었다. 거스 히딩크 감독님이 부르시기 전까지는 일본 J리그 제안만 있었다”고 털어놨다. 당시 유럽 진출의 문은 월드컵 스타들에게 활짝 열려 있는 듯 보였지만, 이영표의 현실은 달랐다.
1999년부터 2011년까지 대표팀 왼쪽을 책임진 이영표는 A매치 127경기 출전으로 역대 5위에 이름을 올린 레전드 풀백이다.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는 포르투갈과의 조별리그 3차전에서 박지성의 결승골을, 이탈리아와의 16강전에서는 안정환의 헤더 결승골을 도우며 히딩크호 4강 신화의 핵심 축으로 활약했다.
현역 시절 ‘꾀돌이’라는 별명처럼, 이영표의 강점은 폭발적인 스피드나 피지컬이 아니었다. 특유의 헛다리 짚기, 공간 창출 능력, 정확한 크로스와 영리한 러닝 디펜스, 그리고 왕성한 지구력이 그를 당대 최고 풀백 반열에 올려놓았다. 한일 월드컵 이후 PSV 에인트호번, 토트넘 홋스퍼, 보루시아 도르트문트를 거치며 한국 선수들의 유럽 진출 길을 넓힌 상징적 인물이 됐다.
하지만 2002시즌을 안양 LG 치타스에서 마친 직후, 그에게 유럽의 러브콜은 없었다. 같은 4강 멤버였던 박지성, 이천수, 김남일, 이을용, 송종국 등이 줄줄이 유럽행에 나서던 시기였기에 이영표의 고백은 더 큰 관심을 끌었다. 그는 “일본에서 제안은 왔지만 가지 않았다. 일본에 가면 유럽에 다시는 못 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유럽에 대한 열망이 그만큼 컸다”고 말했다.
전환점은 히딩크 감독의 전화였다. 이영표는 “2002년 12월에 에인트호번으로 임대 이적했다. 지성이는 완전 이적 계약서에 사인했지만, 나는 6개월 임대였다. 구단이 원해야 완전 이적이 가능한 조건이었다”고 설명했다. 당시 안양 LG를 이끌던 조광래 감독은 “6개월 경험하고 돌아오라”며 웃으며 배웅했지만, 그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에레디비시 데뷔전 교체 출전 이후 이영표는 곧바로 붙박이 주전으로 자리 잡았다. 유럽 첫 시즌부터 공식전 17경기를 소화했고, 네덜란드에서 통산 113경기 1골 17도움, 토트넘 92경기, 도르트문트 22경기 1도움을 기록하며 ‘한국 축구 레프트백의 기준’을 완성했다. 아무도 부르지 않던 순간을 버텨낸 선택과 기다림이, 결국 전설의 출발점이 됐다.
/mcadoo@ose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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